그날이 오면
황씨신문 (http://sulfur.pe.kr)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 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 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49년 유고시집 『그날이 오면』)
* 심훈 (沈熏, 1901~1936) : 서울. 본명은 대섭(大燮). 충남 당진 남산 꼭대기에는 「그날이 오면」이 새겨진 상록탑이 서 있고, 당진에서는 해마다 상록문화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