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 무서워!”
영화 초반부터 그랬다. 명휘에게는 무척이나 무서운 공포영화였던 것이다. 그때마다 자상한 이모는 눈을 가려 주었다. 물론 명휘가 바로 손을 치워 버렸지만. 설마 그래도 재밌는 장면은 있었겠지.
“명휘야, 그럼 뭐가 재밌었어?”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온 단편 〈Presto (프레스토)〉가 가장 재밌었단다. 몇 분만 보여주면 되는걸. 아, 돈 아까워.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스페이스 침스〉가 제일 재밌다고 한다.
어쩌면 공포영화일 수도 있는 〈월·E〉은 〈인크레더블〉이나 〈라따뚜이〉보다는 별로였다. 기대를 많이 한 탓도 있겠지만 귀여운 로봇이 나온다는 점을 빼고는 미국 영화의 전형을 너무 많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거든.
촌놈 (월·E)이 도회지놈 (이브)을 만난다. 둘은 다른 점이 너무 많았지만 촌놈은 도회지놈과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게다가 여기서 도회지놈 이브는 여자라는 사실. 촌놈은 한술 더 떠 뮤지컬 영화에서 본 것처럼 손도 잡고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도회지놈에게는 임무가 있었으니. 그건 비밀!
한편 촌놈은 어쩌다 보니 도회지놈을 따라 난생 처음 보는 세계에까지 가게 된다. 물론 촌놈이 가는 곳마다 말썽이 일어나고 예기치 않게 불량배 로봇들을 구해주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친구(?)가 된다.
늘 그러하듯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쨌든 악당은 모종의 이유 때문에 임무 완수를 방해한다. 도회지놈에게 지고지순한 순정을 바치던 촌놈은 다른 미국 영화에서도 늘 그러하듯이 그 임무를 완수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미국 영화에서 늘 그러하듯이 아까 구해준 불량 로봇들도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하나씩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악당은 셌기 때문에 촌놈은 끝내 도회지놈의 임무 완수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는 것이다.
도회지놈은 그제서야 잊었던 기억을 떠올려 촌놈이 자기에게 얼마나 극진한 정성을 바쳤는지 알게 된다. 아, 후회하는 도회지놈. 물론 후회하면서 그냥 끝날 리는 없다. 왜냐면 이건 미국 영화니까.
촌놈과 도회지놈의 얘기 말고도 오염을 피해 지구를 떠났던 지구인들이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귀여운 로봇이 설치는 게 볼 만할 뿐. 난 청소 로봇이 제일 귀엽던데. 그리고 쥐는 로봇이라도 귀엽지 않다. 바퀴벌레는 애니메이션이라도 전혀 귀엽지 않다.
처음에는 대사가 전혀 없어서 정말로 로봇에게는 대사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사가 있긴 있다. 대신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데 월이 (이렇게 쓰니까 여자애 이름 같은걸?)와 이브의 대사는 딱 다섯 개였던 것 같다. ‘월이’, ‘이브’, ‘임무’, ‘식물’, ‘지구’. 게다가 목소리 변조까지 해 주니 성우가 목소리 연기를 하긴 한 건지 원. 나름대로 악당이었던 오토의 목소리는 어머나! 역시나! 〈폭풍우 치는 밤에〉의 늑대, 〈빨간모자의 진실〉의 늑대, 〈개구리중사 케로로〉의 기로로, 바로 그 목소리. 시영준이었다.
그나저나 디즈니가 예전 같지 않다. 내가 보기엔 한글로 표시해 주었어야 할 부분을 그냥 영어 그대로 내보내는 장면도 많았고, 한글로 표시해 준 부분도 성의 없게 한글 자막으로 간단하게 처리해 버렸다. 예전에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CG를 고쳐 영어를 한글로 바꿔 깔끔하게 표시해 주었는데 이젠 자막으로 처리하다니 비교된다. 앞으로는 대충 가기로 한 걸까?
덤. 월·E (월이)를 빨리 읽으면? 개 이름이 된다. 워리. 엄마는 개 이름으로 아셨음.
* 8월 24일 덧붙임 : 영화에서 월이가 보던 뮤지컬 영화는 〈헬로, 돌리! (Hello, Dolly!, 1969년, 감독 진 켈리)〉라고 한다. 바바라 스트라이샌드로 나온다. EBS에서 8월 23일 밤에 해 줬는데 몰라서 못 봤다. 하필이면 그 다음날 알게 될 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