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20일
만화영화로 만든 우리 만화
일본은 만화가 무너지면 만화영화도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만화를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정리해 보니까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만화는 35편이나 되고 만화가는 24명이나 된다. 여기서 여자는 만화 『협객 붉은 매』에서 이야기를 맡은 소주완까지 포함해도 네 명뿐이니까 여자 만화가는 24명 가운데 세 명 반인 셈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만화영화는 1987년에서 1993년 사이에 주로 모여 있다. 이때는 우리나라에서 한창 국산 TV 만화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로, 이 기간에 만들어진 TV 만화영화 가운데 만화가 원작인 작품이 반 정도이다.
똑같은 주인공이 계속 나올 경우 제목은 달라도 연속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수를 따지는 게 그렇게 큰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어보면 이상무와 이두호가 만화 네 편이 만화영화로 만들어져서 제일 많고 그 다음이 만화 세 편이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이현세다.
만들어진 만화영화 편수로 따지자면 이제는 만화라기보다는 거의 캐릭터 상품이 되어 버린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과 『날아라 슈퍼보드』의 허영만을 꼽을 수 있다. 둘리가 나오는 만화영화는 모두 5편인 데다가 둘리나라에서 지금 또 만들고 있으며 『귀여운 쪼꼬미』도 만화영화로 만들어졌고, 『날아라 슈퍼보드』는 4탄 이후로는 원작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5탄까지 나왔고 만화 『망치』도 만화영화로 만들어졌다.
만화를 원작으로 만화영화를 많이 만들고 있는 일본과 비교해 봤을 때 특이한 건,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만화영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굳이 가져다 붙이자면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 김동화의 『요정 핑크』, 배금택의 『영심이』, 그리고 김나경의 『토리 GO! GO!』를 순정만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봐야 다섯 편뿐이고, 『토리 GO! GO!』는 아무래도 순정만화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만화 전체 35편 가운데 순정만화는 네다섯 편뿐인 데다가 사실 진정한 본격 순정만화는 없다.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막 휘날리는 그림을 제대로 소화할 자신이 없거나 순정만화다운 만화영화는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했거나, 뭐 그런 건가?
김동화의 『요정 핑크』는 원작의 설정과 등장인물을 데려와 연속물로 만들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얘기를 지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냥 원작 내용 그대로 일회물로 끝난 게 아쉽다. 앞으로 다시 만화영화로 만들었으면 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자, 이제 어떤 만화가 어떤 만화영화로 만들어졌는지 보자. 아래 목록은 완벽하지는 않다는 걸 미리 밝혀둔다.
- 신동우
- 『풍운아 홍길동』 - <홍길동> (1967, 극장)
뒤에 호피와 차돌바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피와 차돌바위> (1967, 극장)가 만들어졌지만 원작 만화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고, 30여년이 지나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는 <돌아온 영웅 홍길동> (1995, 극장)이 만들어졌다.
- 고우영
- 『삼국지』 - <삼국지> (1980, 극장), <삼국지 - 관우 오관돌파편> (1983, 극장)
- 김삼
- 『소년 007』 - <소년 007과 은하특공대> (1980, 극장), <소년 007 지하제국> (1981, 극장)
- 박기정
- 『황금의 팔』 - <황금의 팔> (1983, 극장)
- 이상무
- 『태양을 향해 던져라』 -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1983, 극장)
- 『내 이름은 독고탁』 - <내 이름은 독고탁> (1984, 극장)
- 『다시 찾은 마운드』 - <독고탁 다시 찾은 마운드> (1985, 극장)
- 『비둘기 합창』 -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 (1987, MBC)
- 이현세
- 『떠돌이 까치』 - <떠돌이 까치> (1987, KBS)
- 『까치의 날개』 - <까치의 날개> (1988, KBS)
- 『아마게돈』 - <아마게돈> (1996, 극장)
- 김수정
- 『아기공룡 둘리』 - <아기공룡 둘리> (1987, 1988, KBS),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1996, 극장)
- 『귀여운 쪼꼬미』 - <귀여운 쪼꼬미> (1997, MBC)
뒤에 <둘리의 배낭여행>, <한글탐정 둘리> (2002, EBS), <둘리의 나무 속 환상 여행> (2005, 극장) 등이 나오긴 했지만, 원작 만화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 이진주
- 『달려라 하니』 - <달려라 하니> (1988, KBS)
- 『천방지축 하니』 - <천방지축 하니> (1989, KBS)
- 김동화
- 『요정 핑크』 - <요정 핑크> (1991, MBC)
- 김영하
- 『펭킹 라이킹』 - <펭킹 라이킹> (1992, MBC)
- 이두호
- 『머털도사』 - <머털도사> (1989, MBC)
- 『머털도사와 108요괴』 - <머털도사와 108요괴> (1990, MBC)
- 『머털도사와 또매형』 - <머털도사와 또매> (1990, MBC)
- 『장독대』 - <장독대> (1991, MBC)
- 허영만
- 『날아라 슈퍼보드』 - <날아라 슈퍼보드> (1990, 1991, 1992, KBS)
- 『망치』 - <망치> (2004, 극장)
1998년 이후 만들어진 <날아라 슈퍼보드> 4탄부터는 원작의 내용과는 상관없다.
- 배금택
- 『영심이』 - <영심이> (1990, KBS)
- 고행석
- 『마법사의 아들 코리』 - <마법사의 아들 코리> (1993, KBS)
- 소주완 글, 지상월 그림
- 『협객 붉은 매』 - <붉은 매> (1995, 극장)
- 이규형 글, 허무영 그림
- 『헝그리 베스트 5』 - <헝그리 베스트 5> (1995, 극장)
- 김재원
- 『큐라큐라』 - <두치와 뿌꾸> (1996, KBS)
- 김재환
- 『녹색전차 해모수』 - <녹색전차 해모수> (1997, KBS)
- 양영순
- 『누들누드』 - <누들누드> (1998, 1999, 비디오)
- 도래미 글, 이우영 그림
- 『검정 고무신』 - <검정 고무신> (1999, 2000, 2004, KBS)
- 박수동
- 『고인돌』 - <고인돌> (2000, 비디오)
- 홍은영 그림
-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 <그리스 로마 신화 - 올림포스 가디언> (2002, SBS)
뒤에 <그리스 로마 신화 - 올림포스 가디언 - 기간테스 대역습> (2005, 극장)도 만들었는데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한 것 같지는 않다.
- 황미나
- 『우리 사이 짱이야』 - <우리 사이 짱이야> (2004, KBS)
- 김나경
- 『토리 GO! GO!』 - <토리 GO! GO!> (2006, KBS)
참고로 혹시 오해할까봐 덧붙이는데, 만화영화는 꼭 만화를 원작으로 해야 된다는 것도 아니고 만화는 반드시 만화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단지 만화를 원작으로 만화영화를 만드는 일이 많기 때문에 비교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지 우리도 일본처럼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각자 사정이 있고 문화가 다르며 일본은 일본, 우리는 우리니까. 이 글은 그저 우리 만화 가운데 만화영화로 만든 건 얼마나 되고 뭐가 있는지 정리하기 위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