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잊을 수 없는 만화영화 <로보텍>이 또 나온다. 제대로 번역한 건진 몰라도 (shadow에서 전조가 느껴지긴 하지만) <로보텍 : 그림자 연대기 (Robotech: The Shadow Chronicles)>란 제목으로 나오는데, 이미 북미에선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 계획이 잡혀 있고 올 11월에 DVD로도 나온단다.
제작에 DR무비가 참여하고 있던데, 역시 2D와 3D를 더한 작품이라고. 내용은 TV 시리즈 마지막회에서 시작한다. 로봇 원정군이 은하계로 릭 헌터 제독과 초거대 기함을 찾아 나서는데 우주 어두운 곳 어디선가 새로운 적이 기다리고 있더란 얘기. 어허, 릭이 언제 제독까지 승진했네?
<로보텍>은 미국 Harmony Gold에서 일본 만화영화 세 개를 짬뽕시킨 작품이다. 그러니까 <미래전사 볼트론>과 비슷한 경우인데, 순서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超時空要塞マクロス, 1982~1983년, Macross Saga Episode), <초시공기단 서던 크로스> (超時空騎團サザンクロス, 1984년, Robotech Masters Episode), 그리고 <기갑창세기 모스피다> (機甲創世記モスピ-ダ, 1983년, New Generation Episode)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이 가운데 두 편이 방영됐는데, 1990년대 초에 SBS에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가 <출격 로보텍>이란 제목으로, 그리고 <기갑창세기 모스피다>가 <마크로스>란 제목으로 방영됐다. 작품 제목이나 주인공 이름으로 봐선 미국판을 사다가 방영한 걸로 보인다.
TV에서 별로 볼 게 없다고 느끼던 어느 여고생 시절, 우연히 로봇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바로 <출격 로보텍>이었다. 그 당시에 로봇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를 참 많이 했다. 그런데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천사소녀 새롬이> 이후로 가수가 나오는 만화영화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가수가 나오지, 린 민메이 (이 사람이 가수)가 릭과 갇히게 되었을 때는 결혼도 못해 보고 죽게 됐다고 면사포 대용이라고 흰 손수건을 머리에 쓰고 난리를 치는데 상황도 영 아니었지만 특히 민메이 목소리가 짜증이 나서 아주 끔찍했다. 게다가 도대체 로봇은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이 작품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든 황당한 명장면 하나가 있으니…….
릭과 리사와 또 한 명의 어느 남자, 이렇게 셋이 고의였는지 아니었는지 거인 같은 남자 외계인들에게 잡힌다. 남자 여자 사이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던 외계인들은 입맞춤을 해 보라고 하는데, 릭이 머뭇거리자 리사가 자신에게 입맞추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상관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던 릭은 리사에게 입을 맞추고, 그걸 본 외계인들은 까무러칠 듯이 놀란다. 그런데 난 그 다음 장면에서 놀랐다. 리사가 릭의 뺨을 때린 것이다. 아니, 하라고 할 땐 언제고 상관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때리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시간도 안 맞고 실망도 하고 그래서 잘 안 보다가 어느 날 다시 보려고 했더니 언제 끝났는지 안 하더라. <마크로스>란 제목으로 방영된 <모스피다>는 예전에 중국 위성 방송을 볼 때도 그랬지만 그림도 별로고 해서 어쩌다가 한두 번 봤을 뿐이다.
일본판에서 린 민메이가 부른 노래들은 좋아하기도 하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는 극장판을 구해서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 새로 나오는 <로보텍 : 그림자 연대기>는 원래 이야기와 별로 관계도 없는 것 같고, 마크로스 확장판에 대한 실망은 <마크로스 플러스>로 끝내는 게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