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신문

2006년 8월 18일

디지털 복원했다는 <로보트 태권 V>를 봤는데…… (1)

낡은 절이 한 채 있었다. 역사나 문화의 측면에서 가치가 높은 집이었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긴 하겠지만 복원을 하기로 하고 업체에 맡겼다. 시간이 지나 복원을 마치고 나니 겉모습이 옛 기록에 있던 것과 거의 같은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니 이게 웬일인가? 여기 저기 낡아 구멍이 나 있던 벽을 시멘트와 단열재로 처리하고 천장 부분을 지탱해 주는 나무들을 쇠못으로 박은 데다가 단청도 일반 페인트로 칠해 버린 것이다. 이걸 복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좋게 말해 보수고, 솔직히 개조에 가깝다.

<로보트 태권 V>는 원본 필름이 남아있지 않고 남아있는 필름들도 상태가 썩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3년 전 우연히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쓸만한 듀프네가필름이 발견됐고, 전체 10벌 가운데 오프닝과 엔딩 장면이 빠진 8벌이었지만 이걸 디지털 방식으로 복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복원된 걸 지금 서울애니시네마에서 상영하고 있다. 보러 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오프닝이 나오는데 아니 이건? 딴지에서 나온 VCD에서 본 오프닝과 다르다. 앞부분에서 훈이 혼자 태권도 하는 장면이 다 빠진 것이다. 게다가 배경음악도 다르다. 딴지판과 비교하면 최호섭 혼자 부른 <로보트 태권 V> 주제가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아, 오프닝까지 복원하기엔 돈이 부족했나보네.'

드디어 본편 내용이 시작됐는데 그림은 좋은데 음악이 좀 이상하다. 그런가 보다 했다. 김 박사가 나왔다. 목소리가 다르다.

'성우가 나이가 들어서 목소리가 달라졌나? 아, 옛날 성우를 쓰지 못해서 다른 성우를 썼나 보군.'

김 박사 목소리에서도 그냥 넘어갔다. 드디어 훈이가 나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이건 김영옥 씨 목소리가 아니잖아! 안정현 씨 목소리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인 듯 싶었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훈이가 산에서 태권도를 연습하면서 커다란 바위를 둘로 쪼개는 장면이 나올 때, 저기 앞쪽에 앉아 있던 어떤 꼬마가 "말도 안 돼!"라고 했는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말도 안 돼!

우선 디지털 기술로 그림을 옛날 것 (거의) 그대로 만든 건 맞다. 하지만 소리와 관련된 건 아니다. 배경음악, 성우 연기 (대사), 음향효과, 이 세 가지 모두 옛날 것과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배경음악

황씨신문 (http://sulfur.pe.kr)

거의 다 다르다. 내가 <로보트 태권 V>를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본 것도 아니지만, 이건 배경음악을 꽤 기억하고 있는 편이고 특히 분위기가 독특해서 기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건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거의 같은 부분이 없었던 것 같다. 깡통 로보트가 친구들을 놀려주던 장면에서 깡통 로보트의 (가사 없는) 주제가 배경음악이 깔렸고, 한두 장면 <로보트 태권 V> (가사 없는) 주제가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긴 했는데, 그것도 원래 쓰였던 배경음악과 똑같진 않았다. 원래 <로보트 태권 V>의 주제가 변주곡이 쓰이는 장면이 많은데 이 변주곡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로보트 태권 V>가 처음으로 출동할 때 <로보트 태권 V> 합창곡이 나왔는데, 미리내 합창단이 부른 게 아니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는 독창곡이 나왔는데 그건 최호섭이 부른 게 아니었다.

배경음악과 주제가를 모두 새로 녹음했는데 그게 원래의 것과는 다 다르다. 2005년 9월 28일자 필름 2.0 기사에 따르면 최창권 음악감독과 음악사용동의서를 체결했다고 하는데, 한두 곡만 쓰기로 체결한 건가? 그것도 새로 만들어서?

성우 연기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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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새 사람들로 새로 녹음했다. 그런데 내가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도대체 어떤 성우를 썼을까 궁금했는데, 영화가 다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보니까 '성우 김보미, 김보영, 남○○, ○○○, ○○○' 이렇게 다섯 명이 나오더라. 다섯 명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모르는 전문 성우인지, 아마추어 성우인지 아니면 그냥 배우인지는 몰라도, 70년대 영화를 요즘 성우를 써서 녹음했다고 생각해 보라. 어떤가? 2005년 9월 28일자 필름 2.0 기사에 따르면 1980년대 분위기를 살리는 대사톤을 위해 성우들은 다른 일반 영화 녹음 시간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하는데, 70년대 영화에 왜 80년대 분위기를 내려고 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70년대는커녕 80년대 분위기가 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대사도 늘어나고 바뀌기까지 했다. 딴지판 VCD를 보면 김 박사가 로보트 태권 V를 만드는 과정을 지휘하는 장면에서 지시하는 대사는 따로 없는데 여기선 있다. 이런 식으로 원래 없었지만 대사가 생긴 장면도 있고, 정확히 어디서 어떤 부분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때려서 원래 대사가 바뀐 장면도 있었다. 시대에 맞게 대사를 바꿨다 뭐 그런 것 같은데, 조선 시대 문학 작품을 복원하면서 '어서 드시어요'하는 걸 '어서 드세요'로 바꾸면 이게 복원인가?

원래 <로보트 태권 V>에서 성우들 연기의 특징은 괜히 무게 잡는 것, 그러니까 폼생폼사에 있는데 이번 녹음엔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러니 분위기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특히 이번에 녹음한 훈이는 성우 김영선 씨 같은 유형의 목소리로, 원래 김영옥 씨 목소리에 비하면 연약하고 무게감 없고 자신감 없고 기름기 없고 너무 담담하다. 오히려 김 박사에 비해서도 연기력이 밀리는 편이었다.

깡통 로보트 철이는 때때로 원래의 우문희 씨 목소리와 비슷한 부분도 보이긴 했는데, 나름대로 괜찮긴 했지만 그래도 듣기만 해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개구쟁이 목소리를 따라가기엔 부족했고 영희 목소리는 그저 그랬다.

메리는 앙칼진 맛이 전혀 없는 게 흠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역에 비해선 가장 나았다. 원래 메리는 목소리만 들어보면 악역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악역 맞나?) 표독스런 맛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 메리 (아, 한 작품을 두고 꼭 이렇게 불러야 할까?)는 한을 잔뜩 품고 있는 상당히 똑똑한 메리였고 대사도 또박또박 잘했다.

음향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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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원래의 것과 비슷한 게 음향효과이긴 한데, 그때로부터 30년이나 지났으니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예전의 것에 비해 세련미가 난다는 게 흠이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음향효과는 컴퓨터로 볼 때랑 영화관에서 볼 때는 차이가 아주 크게 나는 데다가 이번에 자칭 복원이라는 걸 하면서 돌비 5.1 채널로 녹음을 했기 때문에, 배경음악이나 성우 연기와는 달리 이것에 대해선 뭐라 말하기 힘들다. 그래도 돌비 5.1 채널로 녹음된 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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