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신문

2006년 7월 15일

SF 괴기물 <판타스틱 플래닛>

오랜만에 정신이 드는 만화영화를 봤다. <판타스틱 플래닛 (La Planète Sauvage, 르네 랄루 감독)>이 2004년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는 결국 못 가고 이번에 <KBS 독립영화관>에서 방영해 주는 바람에 드디어 보게 된 것이다. KBS에서는 우리말로 녹음해서 방영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프랑스어로 그대로 방영했다. 다행히도 일본 만화영화처럼 수다스럽거나 대사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보는 데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프랑스어라 좀 느끼하긴 했지만. 씬 박사를 연기한 사람은 목소리가 성우 오세홍과 좀 비슷한 느낌이었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1973년 작품인 데다가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요즘 나오는 만화영화에 버금갈 정도가 아니라 으뜸에 두어도 손색이 없겠다. 종이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작품으로, 확실히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만화영화와는 다른 맛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그림도 좋고, 음악도 좋고, 줄거리도 괜찮았다. 사실 사람이 거인 같은 외계인에게 애완동물이나 쥐새끼마냥 취급되는 내용이지, 외계인 이욤은 생긴 것도 끔찍한 데다가 명상한다고 하는 짓도 이상하지, 엽기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별 희한한 동물과 식물들이 잔뜩 나오지, 음악은 또 그런 분위기에 딱 어울리지, 줄거리에 빈틈이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 거다. 아주 불쾌하고 섬뜩하고 낯선 것이 가득했다.

감독이 이 작품에 어떤 뜻을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나는 그저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정말 반성되더라. 그 영향으로 오늘 <스펀지> 재방송을 잠깐 보는데 곳곳에서 동물 학대가 보였다. 냄비에 넣고 1분 동안 빙빙 돌린 뒤에 평소에는 앞으로 걷던 밤게가 옆으로 걷는지 보는 실험, 다른 보통 게와 밤게를 경주시키는 실험, 여기서 모두 밤게가 사람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판타스틱 플래닛, 즉, 환상행성은 배경이 되는 행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행성은 앙드레 김이 자주 말하는 그 판타스틱한 거 말고 다른 뜻으로 판타스틱함 그 자체다), 작품 안에서는 푸른 외모를 가진 외계인 이욤이 명상하는 데 쓰이는 가상의, 그러나 진짜 존재하던 위성을 가리킨다. 좀 이상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 어느 알에서 파충류 비슷하게 생긴 새끼가 깨어나는데, 그걸 어미처럼 보이는 (하지만 별로 닮지는 않았다) 커다란 동물이 정성스럽게 핥아준다. 새끼도 그걸 기분 좋게 받다가 등을 핥으라는 듯 등을 보인다. 그러자 그 커다란 동물은 새끼를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린다. 지구에도 이런 동물이 있나?

불쾌함과 섬뜩함과 낯섦, 이 세 박자가 딱딱 들어맞은 <판타스틱 플래닛>. 내겐 정말 끝내주는 SF 괴기물이었다. 무더운 한여름에 정말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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