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과 93학번 잡기장에 올린 글이다.
도배다 도배.
tv에서 안개 처리를 보는 건 (모자이크 처리랑 비슷한데) 뉴스 프로그램이나 아니면 무슨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지. 드라마나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특정 상표를 가리기 위해 사용하고. 그런데 이게 tv 만화영화에 심심치않게 나온다니까.
내가 tv 만화영화에서 뿌연 안개 처리를 맨 처음 본 게 97년에 방영한 <은하철도 999>였어. 커다란 눈만 보이는 행성 근처를 지나게 됐는데 그 행성에 이끌려서 은하철도 999가 강제로 그 행성에 정차하게 되거든. 그런데 그 행성은 호기심이 아주 많아서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는 거야. 특히 메텔이 아주 아름답다고 옷을 벗어 보라고 하는데, 이 때 철이가 내가 대신 벗겠다고 하니까 행성 왈 넌 안 벗어도 된다더군. 그래서 메텔이 옷을 벗었는데, 메텔과 차장 아저씨의 대사가 일품이었지.
"보고 싶지만 참겠어요." -_-;
메텔이 옷을 다 벗고 있는데 앞에서 비추는 장면이 있었거든, 거기서 일부 안개 처리 (모자이크였나?)를 하더군. 웃기는 장면이 아닌데 얼마나 우습던지. 하하하 웃었지 뭐. 80년대 방영했을 때는 어땠나 몰라. 이 장면이 삭제됐는지 아니면 역시 똑같이 안개 처리를 했는지.
두 번째로 안개 처리를 본 게 작년인가 sbs에서 방영했던 <로봇용사 다그온> 거의 마지막회에서였어. 원래 로보트 나오는 만화는 좋아하지만 이런 용자류라고 분류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더라. 그래서 별로 보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 만화는 몇몇 화에서는 꽤 독창적인 면을 보여주었지.
예를 들어, 어느 한 화에서 외계인이 다그온 용사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구인 소년을 찾아오거든. 자기도 불쌍한 처지라면서 도움을 받기 원한다고 말하지. 그러면서 다그온들에 대해 묻지. 그러자 그 소년은 열심히 다그온에 대해서, 거의 20분 동안 설명을 해 준단다. 그렇게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그 외계인은 이제 다그온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게 됐지. 이제 그 소년은 필요가 없어진 거야. 그래서 본색을 드러내 죽이려고 하지. 그러면서 바퀴벌레의 모습으로 변해서 소년을 침대 위로 몰아가서는 막 죽이려는 찰나! 소년이 한밤중에 지른 비명소리를 듣고 누나가 달려온단다.
"조용히 좀 해. 아니, 이게 뭐야?"
하면서 슬리퍼로 바퀴벌레를 때려죽이지. 그게 끝이었어. 불쌍한 외계인.
또 한 에피소드에서는 외계인을 당해내지 못하고 다그온이 진단다. 그래서 지구가 전멸할 위기에 처하거든. 어쩔 수가 없었어.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그 외계인이 쓰는 최종 무기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악하게 만드는 거였거든.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주변에 아무 변화도 이상도 없는 거야. 그래서 용사 녀석들이 모여서 이런 얘기를 주고받지. 그 외계인들이 착각을 한 거야. 지구인들은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다고. 지구인들은 원래 악한데.
지금까지 본 이런 류의 만화하고는 좀 다른 꽤 독창적인 얘기였어.
그건 그렇고, 거의 마지막회가 다 돼서는 늘 그렇듯이 빨간색 로보트를 모는 주인공 한 명 (강렬)이 모든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놓게 되지. 그런데 강렬이 엄청나게 세고 아주아주 무서운 마지막 외계인과 마음속에서랄까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강렬이 알몸이더라구. 그리고 아래쪽에 뿌연 안개 처리를 하더군. 동그랗게. 무척 진지한 장면이었는데 역시나 웃음을 참지 못했지.
세 번째로 안개 처리를 본 게, 요즘 k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원피스>라는 거야. 해적이 나오는 거니까 칼부림도 많고 하여튼 그렇지. 첫 회를 봤을 때는 도끼며 칼이며 그런 게 다 정확히 그 부분만 하얗게 나오더라. 그러다가 3회를 봤는데 그 때부터는 또 칼이며 그런 부분이 정확히 까맣게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칼집에서 칼이 한 5% 정도 보이면 그 때는 칼이 흰색인데 (미처 칠하지 못했겠지) 칼이 칼집 밖으로 나오면 까맣게 변하는 거야. 무슨 탄소검도 아니고. 그런데 그런데 이번 주에 방영한 것 중에 말이야 이런 게 있었어.
음, 버기라는 해적이 있는데 (늘 그렇듯이 나쁜 해적) 악마의 열매를 먹어서 몸이 맘대로 따로따로 분리되거든. 그러니까 싸움에 유리하지. 이 버기 해적이 상반신을 분리시켜서 다른 사람을 쫓아가는데 그걸 루피가 방해한답시고 자기 앞에 남아 있는 버기 하반신을 걷어차는데 정확히 급소를 걷어찼지. 아무 그랬을 거야. 역시 안개 처리를 하는 바람에 정확히 볼 수는 없었으니까. 거의 화면의 3분의 1 이 안개로 뿌옇게 뿌옇게. 아, 진짜 그 날은 안개 처리가 심하더라. 아주 코메디라니까.
그냥 생각나서 써 봤어. 옛날에는 만화 안 보고는 못 살 것 같았는데, 만화 안 보고도 죽지 않고 사는 날이 오네. 별로 재미있는 게 없거든. 혹시 tv에서 <빨강머리 앤>을 다시 보여준다고 해도, 내가 그걸 50화까지 다 챙겨볼지 의문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