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신문

2003년 3월 7일

미자와 함께 하는 만화영화 여행 (1)

* 아래는 2003년 3월 7일, 화학과 93학번 잡기장에 올린 글이다.


제목 한 번 거창하다. 드디어 이 게시판이 본격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이야. 먼저 옛날에 했던 것부터…가 아니라 옛날 옛날에 했던 만화영화를 되새겨보자. 내가 퍽이나 좋아했던 로보트 만화.

1. 마징가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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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로보트가 나오니까 좋아하기는 했는데, 엄청 좋아하지는 않았다. 마징가 Z가 출동한다거나 해서 열광하거나 하지는 않았거든. 주제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데서도 알 수 있지만. 여기서 주제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내가 그 노래를 모른다는 게 아니라 주제가의 분위기라든가 그런 걸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지. 그레이트 마징가는 그렇지 않거든. 20여 년을 듣지 못했어도 정확히 기억했으니까. 전에 형부가 어려서 만화영화 주제가를 녹음한 테이프를 줬을 때 마징가 Z 주제가를 듣고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 이게 왜 응원가로 쓰일까 의아하다니까. 이렇게 졸린 노래를!

하지만 또 얼마 전에 70년대 말 TV (mbc)에서 녹음한 우리말 더빙본 일부를 듣고는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그러니까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작품에 들겠군.

강쇠돌.

어려서 보면서도 인간성이 나쁘다는 걸 느낄 정도였고 특히 남녀차별을 지나 여성 비하가 심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 극장판을 볼 일이 있었는데 역시 그렇더군. 당연히 어려서부터 싫어한 인물 중 하나이지.

마징가 Z.

유독 얘가 뛰던 장면만 그나마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 아마 그 제트 스크랜더인가 뭔가 하늘을 날기 위해 필요한 것과 도킹하기 위해 열심히 뛰던 장면이었겠지?

유일하게 생각나는 에피소드.

쇠돌이가 싸우다가 심하게 다쳤다. 너무 많이 다쳐도 치료를 받아야 하고 출동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지. 그런데 어디 나쁜 놈들이 그런 사정 봐줘가면서 쳐들어오냐. 그냥 또 쳐들어왔지. 하지만 쇠돌이가 너무 심하게 다쳤기 때문에 차마 얘는 출동시키지 못하고 대신 애리를 마징가 Z에 태워 출동시켰다. 그런데 웃기는 게 마징가 Z가 지나는 길이 바로 쇠돌이가 있는 (병원) 방 앞인 거야. 그래서 쇠돌이가 출동하는 마징가 Z를 보지 못하도록 창문에 커튼까지 내렸지. (그런데 웃기지 않냐? 마징가 Z가 얼마나 쿵쿵거리면서 다니는데 그걸 모를까.) 늘 그렇듯이 애리는 조금 싸우는 척 하다가 엄청나게 얻어터지고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간다. 그 때 짠! 구세주처럼 나타나는 쇠돌이. 쇠돌이가 어떻게 사정을 알고는 나타나더니 마징가 Z에 올라타서 열심히 괴수 로보트를 무찔러 이긴다.

어려서 이걸 보면서 왜 똑같은 마징가 Z인데 남자가 타고 싸우면 이기고 여자가 타고 싸우면 지는 것인지 몹시 분개했던 기억이 있지. 마징가 Z에 대해서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이게 유일하고.

아수라 백작.

마징가 Z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매력적인 악당 아줌마와 아저씨.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레이트 마징가에도 출연했지.

2. 그레이트 마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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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Z에 이어지는 이야기.

마징가 Z TV편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겠는데 극장판을 보니까 마징가 Z가 거의 고철 수준까지 두들겨맞고 있을 때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저 멀리서 그레이트 마징가가 나타나서 마징가 Z를 구해주대.

그레이트 마징가는 조종사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아. 그만큼 조종사에게는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지. 왜냐? 난 그레이트 마징가 보는 맛, 아니 이거 출동하는 맛에 이 만화를 봤거든. 그레이트 마징가가 출동할 때 주제가가 흐르면서 기억나나? 연구소 앞 물 속에서 그레이트 마징가가 나오고 위에서 수직 낙하 비행하며 도킹하던 장면. 먼저 조종사가 무슨 굴 같은 곳을 빠져나오는 게 먼저였고. 앞서 말한 형부 표 테이프에서 그레이트 마징가를 듣는 순간에도 그 기억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 벅차오르더라.

비너스도 빠뜨릴 수 없지. 폭포에서 걸어나왔지. 하는 일이라고는 그레이트 마징가보다 먼저 출동해서 얻어맞으면서 시간 벌어주기. 마징가 Z에 나왔던 여자 로보트는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 이거다 하고 그림을 보여줘도 어색하더라구 - 비너스는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가슴 폭탄이 한 번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거였냐?

마징가 Z에서는 박사가 애리의 아버지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레이트 마징가에서는 박사가 여주인공의 아버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그레이트 마징가의 박사는 쇠돌이의 아버지잖아. 그럼 쇠돌이에게 누나가 있다는 소리인 건가? 어려서 TV에서 볼 때 쇠돌이랑 그레이트 마징가의 조종사가 비행기를 타고서 어디론가 함께 가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어. 그 외에 그레이트 마징가는 내용이 어땠다든가 하는 기억은 전혀 없고 출동 장면 외에는 단지 악당들만 기억나지. 가슴에 머리가 하나 더 있던 악당. 하반신은 호랑이였던 악당. 마징가 Z 편에서 살아남은 아수라 백작이 와서 인사하던 모습.

3. 그랜다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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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다이저 자체도 좋아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조종사였던 듀크 프리드 왕자를 더 좋아했던 작품이야. 그러니까 이런 거대 로보트 만화에서 처음으로 로보트보다 주인공을 더 좋아한 작품이 되겠군. 아무래도 내가 복면을 쓰고 자신의 정체를 감춘 사람 또는 붉은 색 계통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 게다가 노래 가사에도 있지만

'그랜다이저는 생명을 건다'

언제나 자기 목숨을 걸고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지구로 와서 지구를 위해 싸우는 듀크 프리드와 그랜다이저가 얼마나 안되고 고마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랜다이저는 지금 보니 별로 멋이 없더라. 너무 뚱뚱하고 무겁게 생겼어.

참, 듀크 프리드가 변신(?)할 때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절벽에서 아래도 뛰어내렸지. 헐크가 변신할 때마다 옷은 새로 사 입는 걸까 궁금해했듯이 그랜다이저에서도 듀크 프리드가 출동할 때마다 오토바이는 새로 사는 걸까 궁금했단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궁금한 게, 듀크 프리드 왕자 혼자서 탈출해서 지구로 왔을 텐데 그럼 그랜다이저는 누가 정기점검하고 고장난 거 고치는 거야?

그랜다이저에 대해 특별한 기억이 하나 있는 건. 이게 일요일 아침에 했다는 거지.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갈 것이냐 집에서 만화를 볼 것이냐, 최초로 이런 갈등을 하게 만든 작품. 그러나 집에 남아서 그랜다이저를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방영시간도 자주 바뀌어서 못 본 날도 많았어. 결국 끝까지 하지도 못 했다며?

그런데 '대장'은 그레이트 마징가에 나오는 거 맞냐? 아니면 마징가 Z랑 그레이트 마징가에 모두 나오는 건가? 어려서 만화책으로 봤을 때는 그레이트 마징가에 그런 인물이 나왔는데.

4. 로보트 태권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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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 만화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지. 마징가 Z의 영향을 받아 태어났으나 그 영향력을 걷어찰 만큼의 자기만의 특징과 개성을 갖고 있지. 또 내가 로보트와 주인공 (남자)을 동시에 좋아하게 된 첫 작품이기도 하고. 마징가 Z의 쇠돌이나 그레이트 마징가의 남자 주인공은 성격이 나쁜 것과는 달리 여기 훈이는 성격이 참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니 1탄을 새로 보니 성격이 좋다를 지나 정말 조금만 더 하면 능글맞겠더라.

위의 세 작품은 기본적으로 TV물로 만들어진 데 반해 이 작품은 극장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작품의 질이나 수준을 따지는 데는 무리가 있지. 로보트 태권 브이에서 훈과 태권 브이의 격투 장면, 그 부드러운 몸동작을 생각해 보라구. 그러니까 그건 넘어가고. 그리고 다들 봐서 잘 알고들 있을 텐데 새삼 말할 필요도 없고.

그렇지만!

위의 세 작품, 아니 그랜다이저 빼고 위의 두 작품과 태권 브이를 확실하게 구분짓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영희의 역할이야. 영희도 훈에 비해 역할이 작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늘 바지를 입고 나온다는 점과 태권도 나름대로 잘 하지, 또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라는 점이 다르지.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하잖아. 마징가 Z랑 그레이트 마징가의 여주인공을 보면서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그리고 내가 로보트 태권 브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주제가와 배경음악이야. 원래 배경음악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태권 브이에 관한 모 사이트를 통해서 로보트 태권 브이의 배경음악에 눈을 뜨게 (!) 되었거든. 만화영화하면 내용이든 음악이든 수준 낮고 애들이나 보는 걸로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에는 그런 게 통하질 않는다고 해야겠지. 특히나 그 시대에 이 작품은 다른 실사영화를 제치고서라도 으뜸에 놓을 수준이라고 생각해. 음악에서도 물론.

특히 주제가는 정말 신기한 것이 어쩌면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작품의 주제가를 딱 한 번만 들려줘도 다를 잘 외우는지 모르겠더라. 조카들한테 로보트 태권 브이 주제가를 들려주면 금새 외워서 따라부른다니까. 깡통 로보트의 노래도 인기만점이고. 깡통 로보트의 노래는 일단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 웃기부터 시작하니까. 이 노래뿐만이 아니라 70년대에서 80년대 초에 만들어진 극장용 만화영화의 주제가들. 그러니까 최창권, 정민섭 이 두 분이 만든 주제가들은 대개 애들한테 한 번만 들려줘도 곧 외워 부르는데, 이렇게 만드는 거 정말 실력이지.

그리고 황금날개 123은 좋아하지만 청동거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이 없다. 그리고 또 전에는 몰랐는데 인터넷 되고 나서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그림을 구해서 보니까 왜 이렇게 사납게 생겼던지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 입 모양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더라구. 로보트 태권 브이는 얼굴이 걔네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순한 편이지.

어쨌거나 내가 어렸을 적에 이런 만화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

여기까지 다 읽었니? 우와! 대단하다. 별로 안 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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