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거의 하루 종일 만화영화를 방영한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EBS에서는 만화영화를 진짜 많이 내보낸다. 더구나 최근엔 추억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어른들이 좋아할 만화영화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다른 방송국은 만화영화 방영을 기피하는 저녁 시간에.
볼만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시간에 만화영화를 편성했다는 점에는 높은 점수를 준다. 하지만 EBS의 만화영화 편성에는 해가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의 짜증나는 현실 중 하나가 특별편성이 없는 날이 드물다는 것이다. 특별편성이 끼면 예정된 정규방송은 나가지 않고 대신 그 다음 시간에 나간다. 하지만 EBS는 좀 다르다. 특별편성으로 밀린 정규방송인 만화영화는 그 다음 시간에도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매주 한 편씩 방영하는 만화영화가 있는데 6화를 방영하기로 되어 있는 시간에 특별편성이 낀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다른 방송국 같으면 이 만화영화를 방영하는 시간에 일주일 간격으로 5화, 특별편성, 6화, 7화의 순서대로 나갈 것이다. 하지만 EBS에서는 일주일 간격으로 5화, 특별편성, 7화의 순서대로 나간다. 본방송에서 6화가 완전히 빠진다.
6화를 볼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만약 이 만화영화를 다른 시간에 재방송하고 재방송 시간에 다른 특별편성이 없다면, 재방송 시간에는 6화가 제대로 나간다. 본방송에서는 6화를 볼 수 없고 재방송에서는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특별편성이 끼면 그 다음 시간에도 방영을 하지 않고 아예 한 회를 그냥 통과시킨다는 생각, 정말 특이하다.
EBS에서는 만화영화를 잘 우려먹는다. 그러니까 한 번 방영으론 끝내지 않는다는 거다. 여러 번 틀어주고 또 틀어준다. 앞서 방송을 놓쳤거나 그 작품을 좋아해서 또 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좋은 일일 테지만 이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왜냐하면 EBS는 만화영화를 재방송할 때는 끝까지 다 보여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체 26화짜리 만화영화를 재방송하고 있는 경우 17화까지 방영하고 난 뒤 마침 개편이 있다든가 하자. 그럼 17화에서 그냥 끝날 확률이 높다. 나머지는 방영하지 않는다. 기다리던 〈엄마 찾아 삼만리〉를 모처럼 재방송한다고 좋아했는데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떠나면서 그냥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재방송은 단지 시간 때우기용이라는 걸 너무 드러낸다. 이런 식으로 EBS 안티를 많이 키운다.
이처럼 EBS가 만화영화 재방송을 중간에 끝내는 일은 많았지만 그래도 본방송은 끝까지 방영했다. (아니 거의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방영한 〈독수리 5형제〉는 본방송인데도 중간에 그냥 끝내 버렸다. 〈독수리 5형제〉 1기가 전체 100화가 넘는데 한 반쯤만 방영한 것 같다. 그 시간은 대신 〈시간탐험대〉가 접수했다.
본방송을 중간에 접는 건 처음 보네. 참 다양한 방법으로 안티를 키운다.
EBS에서 〈빨강머리 앤〉을 할 때 일인데, 중간에 한 편씩 빼먹은 일이 있었다. 〈빨강머리 앤〉은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에 하나가 빠지면 앞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걸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빠진 걸 쉽게 알 수 있다.
EBS 게시판에 항의글이 여럿 올라왔다. 관계자의 답변에 따르면, KBS 녹음판의 보존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도저히 내보낼 수가 없어서 방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다음 이야기는 빠질 거라고 미리 자막으로 알려주든가.
〈빨강머리 앤〉 사건 때도 따로 공지가 없었지만, 위에서 말한 특별편성으로 한 회를 빼먹는 경우에도 따로 공지를 하지는 않는다. 물론 만화영화를 끝까지 방영하지 않고 중간에 끝내 버릴 때도 공지는 없다. 〈독수리 5형제〉를 중간에 끝내버릴 때도 공지는 없던 듯하다. EBS는 공지를 (잘) 안 한다. 그래서 안티를 키운다.
EBS는 만화영화를 많이 하기도 하고, 특히 최근엔 추억의 애니메이션으로 점수를 많이 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기대를 잔뜩 갖게 해놨다가 이런 식으로 빵! 사람을 가지고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