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안에만 살아서 세상 물정 모르는 흰둥이 개 볼트가 어쩌다 진짜 세상에 나가게 되고 거기서 세파에 찌든 말라깽이 검둥이 고양이 미튼스를 만난다. 그리고 볼트가 진짜 영웅이라고 믿고 있는 뚱땡이 햄스퍼 라이노도 만난다. 우정을 살짝 곁들인 이 셋의 좌충우돌 헐리우드를 찾아가는 모험 이야기. 물론 볼트의 주인인 여자 아이 페니의 눈물로 감동샘을 자극하는 걸 빼놓으면 안 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다. 그렇다. 그랬던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뻔한 공식 중 하나와 똑같다. 백인-흑인-뚱땡이-어린이. 어려서부터 이런 구성으로 애들을 길들여서는 큰 뒤에도 헐리우드 영화에 쉽게 빠지게 만드나봐. 이 영화를 두고 애니메이션판 트루먼쇼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어불성설일세.
픽사가 참여하진 않았어도 3D 애니메이션 기술은 좋다. 특히 풀을 묘사한 건 놀라웠다. 진짜 사진 같았거든. 사진 같았어.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풀은 사진이니까 사진 같았지. 풀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기술은 좋았다. 내용이 뻔해서 그렇지.
얘네들은 기술 발전시키는 거랑 설정 바꾸는 것밖에 못 하는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안 하든가. 내용이 만날 거기서 거기다. 설정 달라진 거랑 애니메이션이란 것만 빼면 그냥 헐리우드 영화랑 다를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보통은 되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90년대 초중반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요즘 나오는 건 정말 딱 시간 때우기용이다.
한편 영화에서 볼트가 미튼스를 협박하며 말하지. 초록눈을 가진 남자가 있는 곳을 밝히라고. 하지만 개는 사람 기준으로 볼 때 색맹이다. 빛깔을 구분하지 못한다. 소와 마찬가지로 개도 모든 게 흑백으로만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볼트는 칼리코 박사가 초록눈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초록이 뭔지도 모를 수밖에 없다.
덧붙여 조카들에게 감사를. 가엾게도 우리말 제작진 확인하려는 이모 때문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이제는 나가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