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들이, 사악한 힘에 의해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파리가 되어 버리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만약에 파리로 모습이 바뀌어버린 지인이 나를 찾아왔는데 내가 파리채로 죽인다면 그건 비참하고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게 인사를 하러 왔을 텐데, 나라고, 네가 아는 나라고 소리 없이 무진장 외쳤을 텐데 무정하게도 난 파리채를 휘두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에 파리를 잡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모기를 죽일 땐 이런 생각이 코딱지만큼도 들지 않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얼마 전 집에 다리 많은 벌레 (이게 쉰발이인지는 모르겠다)가 한 마리 나타났다. 처음엔 무서워서 피했는데 이틀 정도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한밤중에 화장실에 다시 나타났다. 언니는 바퀴벌레 잡는 약으로 죽이려 했다. 하지만 약냄새도 냄새지만 바퀴벌레와는 달리 딱히 해를 끼치는 벌레가 아니어서 죽이려는 걸 말렸다. 그리고나서 며칠 동안 다시 모습을 감췄는데 오늘 새벽 화장실에서 다시 발견한 것이다.
화장실 불을 켜자 세면대 밑에 쉰발이가 있었는데, 세면대 밑에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왔다갔다할 뿐 더 먼 곳으로까지는 달아나지 않았다. 놀라서 당황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다가 세면대 밑의 한쪽벽에 착 달라붙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발을 던져 죽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쉰발이가 벽 밑에 꼼짝않고 달라붙어 있는 걸 보니,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사람들이 벌레를 만나면 쉽게 죽여버리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난 벌레 무서워하는데. 난 벌레를 잘 잡지도 못하고 네가 벌벌 떨 만큼 그런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어이가 없으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좀 슬프기도 했다. 착각이면 어떠랴. 죽일 수 없었다.
백석의 시 ‘거미’ 한 편이 곤충 여러 마리의 목숨을 살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