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때다.
작은오빠가 오랜만에 집에 내려오더니 하루는 저녁에 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다가 어느 음식점 비슷한 곳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는 거기서 뭔가를 먹다가 갑자기 고사성어 얘기를 꺼냈는데 그때 내게 해 준 것이 사족 (蛇足)과 기우 (杞憂)였다. 오빠가 어떤 의도로 이 얘기를 해줬는지는 모르지만, 사족과 기우라는 고사를 들으면 불필요한 짓이나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교훈을 새기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전혀 반대였다. 쓸데없는 걱정을 안 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우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는 혹시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무척 심각하게.
어려서는 걱정이 많았다. 특히 전쟁이나 기아, 자연재해와 같이 전 인류나 우리나라가 멸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건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다. 물론 외계인의 침략도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런 고민거리를 어른들에게 말하면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쓸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마라.’
아니, 어쩜 저렇게 무심할 수가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가, 그리고 인류가 어떤 위험에 직면해 있는데, 그렇게 태평할 수가 있다니 말야. 왜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없을까? 무심한 사람들 속에 있지만 그래도 난 인류를 위해 이 고민거리들을 헤쳐나가야지.
꼬마는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반짝이며 의지를 다졌다.
꼭 옷 벗은 여자가 나오진 않더라도 신문과 뉴스에는 선정적인 기사가 넘친다. 당장 북극의 빙하가 다 녹아서 육지가 몽땅 물에 잠길 것처럼, 전쟁과 전염병이 전 지구를 휩쓸 것처럼, 그리고 무분별한 과학개발로 인류가 멸망할 것처럼.
그런데 무덤덤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기사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터인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 그 옛날 어른들이 내게 보였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걱정을 하느냐 마느냐는 쓸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무관심, 이게 어른들의 세계인가?
난 오늘, 어른으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 하나를 찾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