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샘터에서 나온 과학소설 『노인의 전쟁』에 대한 출판사 소개글이다.
무려 적이 세 번이나 나온다. 일부러 음률에 맞추려고 ~적을 반복해 쓴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좋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뜻인가. 가장 지구답고 가장 인간답고 가장 미국다운 SF 연애소설이란 뜻으로 보면 되나? 대체 여기서 지구적이라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일까? 지구답고는 아닌 것 같고 전 지구에 걸쳐 일어난다는 뜻도 아니고.
~적은 참말로 쓸데없이 많이도 쓰인다. 다음은 모 신용카드 광고와 경향신문 ‘책 읽는 경향’에 실렸던 글에서 나온 표현이다.
해석해 보자. 천재적 카드생활은 천재 같은 카드생활이란 뜻일 거다. 하지만 그 나머지 세 개는 솔직히 무슨 뜻인지 이해는커녕 감도 오지 않는다. 여기선 이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다 싣지 않았지만, 전에 신문에서 이 표현이 들어 있는 글을 읽을 때 앞뒤 문맥을 다 따져봐도 도무지 무슨 뜻으로 이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연을 상상하는 게 생태적 상상력인가?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하는 게 우주적 상상력인가? 공간적 크기는 또 뭐야?
~적이란 표현은 못난뻥이거나 잘난뻥인 것 같다. 글쓰는 사람이 사실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면서 그냥 남들이 쓰니까 ~적 ~적 ~적 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 못난뻥이다. 글쓰는 사람이 똑똑한 척 배운 척 하려고 ~적 ~적 ~적 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 잘난뻥이다 (이 경우 뜻을 모르면서 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쪽이든 ~적을 남발하는 사람은 별로다.
게다가 ~적 하는 표현은 애매모호해서 그 뜻이 다가올 듯 말 듯 명확하지 않다. 뜻이 대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을 깜박깜빡 한참 생각을 해 봐야 뜻이 잡힐까 말까 한다. 그 글을 읽으면 나도 똑같이 못난뻥이 되거나 잘난뻥이 될 것만 같다. 그러니 ~적이 넘쳐나는 글도 별로다.
다음도 신문에서 읽다가 벙~한 문장이다.
문학적으로 접근할 때 백범은 문제적 인간이었어요.
2008년 8월 5일 경향신문 김별아 무슨 글인가에서
문학 관점에서 볼 때 백범은 문제 있는 인간이란 뜻? 맞게 해석했나? 기억으론 저게 첫 문장이었는데 여기서 생각이 탁 막히는 바람에 그 다음 줄은 아예 읽을 생각을 안 했다. ~적이 반복해서 자꾸 나오면 이해도도 떨어지지만 읽을 정도 확 떨어진다. 게다가 아는 작가라면, 믿음과 애정이 확 떨어진다.
예전에 중국 위성방송에서 화면 아래 나오는 자막에 적(的)이 수두룩하게 많은 걸 봤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부쩍 적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마해송의 동화 『물고기 세상』에 보면 물고기의 입의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이게 ~적이란 표현을 남발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건지 (이 동화는 1950년대 나왔음).
글자도 어려운 글자를 골라서 쓰고, 어떤 때는 무슨 적 무슨 적 무슨 적 해서 적이 대여섯 번 튀어나와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게 하는 사람을 학문이 높은 유식한 사람이라 하지요?
마해송, 『물고기 세상 1』, 한마당, 80쪽
~적이 넘쳐나는 글치고 잘 쓴 글은 드물다. 정말로 지들끼리만 아는 전문용어가 아니라면 누가 읽어도 뜻이 쉽게 통해야 한다. 특히 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글에서 딱히 전문용어도 아니면서 ~적을 많이 남발하던데, 박사 학위 열 개, 감투 스무 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적이 남발하는 글을 쓰면 그 사람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지들끼리 통하는 말 갖고 니들끼리 놀아라 싶기도 하고, 과연 지들끼리는 뜻이 통하나 의심스럽기도 하다.
더군다나 신문 같은 데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이라면 글을 쓸 때 더욱 신경써야 한다. 일단 독자가 글을 끝까지 읽고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해야 글쓴이의 의견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도중에 읽기를 관두게 만들거나 다 읽고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게 쓴다면, 그거야 말로 안티다! 신문에 이런 글 많다. 그저 지면이나 채우려는 게 아닌가 싶은 글들. 정말로 실력 있는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잘 설명하는 법이라던데.
나는 ~적이 싫다. ~적을 너무 많이 써대는 게 싫다. 물론 나도 안다. 내가 적당히 알고 있어도 ~적 ~적 ~적을 몇 번 써 주면 그럭저럭 뭔가 있어 보이는 글이 된다는 걸. 대충대충 ~적을 남발하면 글 쓰기 참 쉽다는 걸. 독자가 이해하든 말든 그런 거 따지지 않는다면 ~적 남발하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하지만 굳이 ~적을 쓰지 않아도 뜻이 통하게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뜻이 더욱 분명하고 쉽게 드러나게 할 수 있다면, ~적을 쓰지 말자구. 난 창피해서도 잘 안 쓰려고 하지만.
사실 경향신문의 책 읽는 경향에 실리는 글은 내 입장에서는 대부분 안드로메다인이 쓴 글 같다. 뜬구름 잡는 것처럼 잡히지 않는 것이 읽어도 무슨 뜻인지 영. 편집도 내용이 눈에 확 들어오게끔 잘 된 편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용도 내가 기대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책 읽는 경향에서 소개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게,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손가락 다섯 개로 세고도 남을 정도다. 아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나 읽으면서 바로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겐, 경향신문의 책 읽는 경향은 그냥 빈칸이어도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