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인가 SBS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 〈자명고〉 재방송을 조금 봤는데 조카들이 가끔 쓰는 표현을 빌자면 한마디로 헐!
일단 신하들이 낙랑군 태수더러 폐하라고 한다. 일컬어 황제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최리의 집안일이 한나라 수도까지 전달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태수 선까지만 보고가 올라간 게 분명한데, 황제라니. 언제부터 한나라의 태수더러 황제라고 하고 폐하라고 불렀단 말인가? 그래도 되나? 이거 반역 아닌가? 최리는 군대를 키울 것도 없이 한나라에 이 사실을 찔러주면 끝나겠다.
다음으로 모하소의 태몽에 여자아이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글쎄 이 아이가 모하소더러 아줌마라고 부른다. 요즘이야 나이를 봐서 대강 아줌마라고 편하게 부르지만 과연 저 시대에도 그랬을까? 그 시대에도 아무에게나 편하게 아줌마(아주머니)란 표현을 썼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아주머니는 원래 친척 관계에서 쓰는 표현임)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때는 신분 사회인데 과연 모하소가 아줌마란 말을 들을 신분인가 말이다. 태몽 속에 나온 여자아이는 아줌마에게 가 살아도 되겠느냐고 물을 게 아니라 부인에게 가 살아도 되겠느냐고 물었어야 그럴 듯하지 않았을까. 옷만 그렇게 입으면 사극이냐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어이없는 표현에 있는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드라마를 대하사극 자명고라고 하는 데 있다. 대하사극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름을 붙였거나 아니면 이 드라마가 정말로 대하사극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대야사극 자명고라고 한 걸 중간에 어떤 담당자가 잘못 읽고 대하사극 자명고라고 실수한 걸 수도 있다. 세숫대야에 담은 물만큼의 깊이를 가진 사극, 대야사극.
SBS 자명고는 드라마 자명고라고 하면 된다. 그럼 웬만한 건 다 넘어가줄 수 있다. 그래도 굳이 사극이라고 하고 싶다면 연애사극 자명고가 좋겠다. 호동 왕자의 삼각 관계, 즉 연애가 이 드라마의 핵심 아닌가?
SBS 드라마 〈자명고〉를 보니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가 자꾸만 떠오른다. 역사에 관해서 여러 가지 설이야 이전부터 있다고 치더라도, 자명고가 사실은 북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설정, 대무신왕 무휼이 원비를 냉대했다는 설정, 무휼왕이 냉혹하지만 외롭고 고독했다는 설정 등 여러가지가 비슷하게 겹치는 건 우연이라고 하기엔······.
그래서 이미 KBS에서 김진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드라마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지만 어쩌면 SBS 드라마 〈자명고〉도 김진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SBS 자명고 누리집에 이 드라마의 원작이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라는 말은 없다. 하긴 드라마의 원작이란 게 계약을 하고 돈을 줬는가의 문제이긴 하지. 코딱지만큼만 가져다 써도 계약을 하고 돈을 줬으면 원작이 올라가지만 계약을 하지 않으면 코끼리만큼 가져다써도 원작이 아니다.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가 원작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만든 건 KBS 드라마 〈바람의 나라〉였다. 하지만 실제로 김진 만화가 원작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SBS 드라마 〈자명고〉라니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참고로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SBS 드라마 〈자명고〉가 김진 만화를 표절했다는 뜻은 아님. 다만 이 두 드라마를 보면 왠지 김진 만화가 자꾸만 떠올랐고,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를 원작으로 한 KBS 드라마 〈바람의 나라〉보다도 오히려 이 두 드라마가 김진 만화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는 얘기지. 오해 없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