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신문

2006년 9월 23일

영화 제목 번역하기

난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 되도록 순우리말을 쓰고 우리말답게 쓰려고 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노력은 할 수 있으니까. 외국어에 쏟는 노력의 반만 기울여도 그게 어딘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애니메이션전에 관한 기사를 쓰다가 예전에 생각했던 번역 문제가 떠올랐다. 굳이 ‘묘’라는 한자어를 써서 <반딧불의 묘>라고 번역할 필요가 있었을까? 원제 <火垂るの墓>를 직역한 것이겠지만 이걸 처음에 번역한 사람이 <반딧불의 무덤>이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쉽다. 이 제목으로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지금은 정식으로 작품을 들여오면서도 <반딧불의 묘>라고 쓴다. 물론 수입업체에서 <반딧물의 무덤>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런데 ‘반딧불’은 곤충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곤충 꼬리에서 나는 불빛을 가리킨다. 곤충을 가리키는 제대로 된 낱말은 ‘반딧불이’ 아니면 ‘반디’이다. 그러니까 저것도 <반딧불이 무덤>이나 <반디 무덤>이 되어야 맞다.

그런데, 그런데, 반딧불이는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저건 <개똥벌레 무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저걸 처음에 번역한 사람이 <개똥벌레 무덤>이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추억은 방울방울>은 번역을 참 잘했다. 원제가 <おもひでぽろぽろ>인데, 사전을 찾아보면 ぽろぽろ는 물건이 흐르듯 떨어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주르르, 뚝뚝 같은 말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마치 비눗방울이 퍼지는 모양인 듯 <추억은 방울방울>로 옮긴 것이다. 비눗방울 하면 뺄 수 없는 게 뽀글뽀글인데, 그렇다면 이걸 <추억은 뽀글뽀글>로 번역했더라면 또 어땠을까?

제목은 정말 중요하다. <워털루 다리 (Waterloo Bridge)>와 <애수>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나고, <혹성 탈출>은 혹성이 아니라 행성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처음에 <혹성 탈출>이라고 했으니 새 영화가 나왔는데도 만년 <혹성 탈출>이다. <에브리바디 세즈 아이 러브 유 (Everybody says I love you)> 같은 어이없는 영화 제목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옛날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서부 영화가 있는데, 토요명화 시간에 많이 했더랬다. 그게 제목이 <석양의 무법자>와 <황야의 무법자>인데 원제는 <석양의 무법자>가 <For A Few Dollars More>이고 <황야의 무법자>가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같은 경우는 영화 끝에서 각기 다른 상황에 있는 세 명을 차례로 보여주며 `좋아 (Good)', `안됐군 (Bad)', `끔찍하군 (Ugly)'이라고 자막으로 나오기 때문에 영화 제목이 그렇게 붙은 까닭이 다 있다. 물론 우리나라 제목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서부 영화가 대개 그렇지만 총잡이가 제 아무리 멋있게 굴어도 싸우는 까닭엔 별거 없다. 다 돈 때문이다. 이 영화도 그렇다. <석양의 무법자> 원제가 잘 보여주질 않나? 비록 우리나라에선 그럴 듯하게 멋진 제목을 붙여놨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화면 아래 자막에 우리말 영화 제목과 함께 원제 <For A Few Dollars More>가 나오는 걸 봤을 때, 대번 솔직하고 내용은 물론 원제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제목을 생각해냈다. 바로 <그깟 돈 몇 푼 더 가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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