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늙은이, 어린이, 임산부, 심장이 약한 사람, 안 읽은 게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사람은 읽지 마세요.
없는 데도 있긴 하지만 승강기 1층 대기소에는 대개 거울이 있다. 어디서 본 거에 따르면 사람들이 승강기가 내려오는 걸 하도 지겨워해서 기다리는 동안 거울이나 보라고 1층 승강기 옆에 거울을 달아둔 거라고 하던데,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없는 것도 있긴 하지만 승강기 안에 거울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타고 있는 동안 지겨울까봐 달아둔 것일까? 뭐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승강기를 타게 되면 층수를 지켜보는 일이 더 많던데 굳이 거울까지 달 필요가 있을까 싶다. 뭔가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닐까?
승강기 안에는 거울이 양쪽으로 두 개씩 달려 있다. 그러니까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승강기 안에서 이런 거울을 처음 봤을 때 내가 해 본 것은, 몸을 뒤로 빼고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기였다. 정말로 손가락이 양쪽 거울에 무한개로 보이나 안 보이나 확인해 보기 위해서.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두 거울 사이에 놓인 물체가 거울 사이의 각도에 따라서 거울에 몇 개의 모습으로 비치는지에 대한 걸 배우는데, 학교에서는 실험을 했는지 안 했는지 하여튼 집에서 혼자 따로 실험을 했다. 그때 두 거울을 양쪽에 서로 마주보게 놓고 하는 것도 있었는데 나로선 실험에 쓸만한 거울을 두 개나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 실험은 하지 못했다. 거울 두 개가 없으면 다른 실험도 하지 못했을 텐데도,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다른 건 했는데 이 실험만큼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말로 물체가 거울에 무한개나 비쳐 보이는지, 그게 믿을 수 없어 늘 의심이 가고 궁금했다. 그랬다가 승강기 안에서 양쪽에 달린 거울을 봤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그때 마침 승강기 안에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안심하고는 바로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 결과는, 무한개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손가락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양쪽 거울에 비치더라는 것.
그러니 승강기 안에 거울이 달린 까닭으로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전 국민의 과학탐구열을 북돋기 위해서였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이런 앙큼한 생각을 실제로 행동에 옮겼으리라고는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아, 그리고 나는, 지금도 승강기 안에 혼자 타고 있으면 가끔씩 이 실험을 하곤 한다. 무척 재밌다. 승강기 안에 양쪽으로 거울이 달린 아파트에 이사온 게 좋은 점도 있다.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혹시 거울을 낱개로 팔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차피 1층에 달고 남는 거 승강기 안에도 달고 그런 거지 뭐. 정말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진짜일 때도 많으니까 무시하지 말자.
그리고 세 번째로 떠오른 생각, 이거야말로 바로 정답이구나 했던 거다.
우선 승강기를 떠올려 보자. 승강기는 닫힌 공간이다. 문이 닫히고 나면 무슨 일이 생겨도 도망갈 데가 없다. 천장을 뜯고 위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고 현실에선…… 나는 키가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자, 승강기를 떠올렸으면 이번에는 승강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보자. 어디선가 풍겨오는 방귀 냄새, 삐- 인원이 초과했다는 소리, 승강기 고장나서 안에 갇히기, 칼을 든 강도 만나기, 아니 이건 너무 끔찍하니까 빼고. 늦은 밤에 낯선 사람과 단 둘이서 승강기 안에 있기. 이거다 이거.
도망갈 데도 없고 밖에 도움을 청하기도 힘든 닫힌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단 둘이 있게 됐다. 그것도 한밤중에! 왠지 무안하고 어색해서 고개를 돌리다가 무심코 거울을 보았다. 그런데 거울에는 나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렇다! 승강기 안에 거울이 있는 까닭은 바로 같이 탄 사람이 귀신인지 아닌지 판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에나 이런 상큼한 생각을 다 하다니 도대체 누구였을까? 승강기에 귀신과 함께 타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나저나 승강기에 단 둘이 탔다가 귀신을 만난 거면 그나마 좀 낫지, 만약에 여러 명이 탔는데 거울에 나 혼자만 비친다면 정말 싫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