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동인문학상을 받은 권지예의 소설집 『꽃게무덤』에 실린 단편소설 「봉인」이, 인터넷에서 시골의사라는 ID로 알려져 있는 박경철의 수필집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 실린 글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네티즌들이 발견해서 문제를 제기했단다.
복벽결손은 앓고 있던 신생아를 사일로라는 방법으로 치료하고 있었는데 좋아지는 듯하다가 나빠져서 결국 아기는 죽었고 그 뒤에 엄마도 따라 죽었다는 내용이 같다고 하는데, 천주교 신자인 엄마가 아기에게 묵주를 쥐어준 것과 나중에 목을 매어 죽는 것까지도 똑같다고 한다. 비록 단편소설 「봉인」의 줄거리는 이게 다가 아니라 오진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여주인공의 주변사람 이야기로 이게 나온다고는 하지만.
이런 저런 얘기들을 보아 표절 의혹을 받는 당사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반응을 기대했다.
'전 그 글을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
아니면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표절의혹 당사자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권지예 씨는 YTN 11월 3일 뉴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요즘 인터넷 매체가 많잖아요. 작가들도 인터넷에서 힌트를 얻어 쓰기도 하고 그래서 저도 그렇게 했는데 선생의 글을 받아서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을 그 다음 책을 찍을 때는 명시하겠다고 얘기했어요."
또『꽃게무덤』을 펴낸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동아일보 인터넷판 11월 5일자에 나왔다고도 한다.
"권 씨가 '인터넷에서 본 글을 소재로 가져왔으며 박 씨의 수필집에 들어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박 씨에게 e메일을 보냈지만 답신이 없었다. 다음 판부터는 출처를 넣겠다'고 전해왔다"
그러니까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를 먼저 보고 그걸 따다가 이 단편소설 「봉인」을 쓴 건 맞지만 표절은 아니고 출처를 밝힐 거니까 이제 됐다는 주장이다. 양심에 걸리긴 하지만 뒷일을 생각해 우기고 보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양심에 전혀 걸리는 게 없는 건지.
동인문학상의 심사위원회 (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는 표절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짜임의 방식과 복잡성의 정도가 다르다면 두 작품은 완전히 별개의 작품으로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두 작품을 검토한 결과 구성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소재가 있었기 때문에 소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빛나는 작품을 쓴 소설가가 소재를 제공한 사람에게 사후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인간적인 예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 인터넷판 11월 5일자)
아니, 이것은 전에 이희정의 만화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와 MBC 드라마 <두근두근 체인지> 사이 표절의혹에 대한 판결과 비슷하다. 그때 내가 이해하기로 판결 내용은 이랬다.
MBC 드라마 <두근두근 체인지>가 이희정의 만화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를 베낀 건 맞다. 하지만 그대로 베낀 건 아니고 여기저기 손을 봤으니까 괜찮다. 게다가 이미 드라마 방영도 다 끝난 마당에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둘 다 사후약방문이란 얘긴데, 심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문학 장르가 다르다는 이론과 논리까지 내세운다.
"문학적으로 장르가 다른 작품 사이에 표절 문제가 성립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후 문학이 중시하는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미학적 장치로서 짜임새(구성)여서 설령 같은 장르라 할지라도 구성방식과 복잡성의 정도가 다르다면 두 작품은 완전히 별개의 작품으로 인정돼야 마땅하다." (5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
수필과 단편소설 사이에도 문학 장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원작이 되는 작품 (소설이나 만화)과 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 (드라마나 영화)은, 저 위의 표현을 빌자면 짜임의 방식과 복잡성 정도 그리고 구성이 달라지게 마련이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원작이 저게 맞나 싶은 때가 많은데. 그럼 문학 장르가 다른 것 이상으로 매체가 다르기까지하니 소설을 따와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면서는 굳이 저작권 계약을 맺고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겠네? 사후에 원작자에게 감사를 표현해서 인간적인 예의만 갖추면 되는 건가?
도대체 KBS 드라마 <풀 하우스>는 왜 원수연 만화 『풀 하우스』와 저작권 계약을 맺었으며 어째서 영화 <형사 Duelist>는 방학기 만화 (『다모』)가 원작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일까? 바보냐? 김 진 만화 『바람의 나라』를 표절한 의혹을 받은, 앞으로 만들 거라던 드라마 <태왕사신기>야말로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김수현 작가의 경우는 뭐람? MBC 드라마 <여우와 솜사탕>이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서툴게 베꼈다는 뜻인가?
어떤 원작이든 새로 만들면서 손길을 거치면 내용과 구성이 달라지게 마련이고 이때 대부분 매체가 달라지며,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 쪽대본이 일반적이다보니 드라마가 다 끝날 때까지는 줄거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데다가 소송에 들어가도 판결 결과는 드라마가 다 끝난 다음에야 나올 테니 뻔한 거다.
동인문학상 수상위원회의 표절 판결은 저리 났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의 판결은 그와는 별개의 것이다. 위에 머니투데이 김재영 기자가 쓴 11월 8일자 기사 첫 부분에 두 글에서 인용 비교한 부분을 소개하고 있는데, 둘 다 똑같은 의학책을 베낀 것이 아니라면……. 전체적인 표절 유무와 함께 이것도 참…….
장을 배의 중간으로 모아 바세린을 바른 거즈로 둘러싼 다음 아이스크림의 콘 모양으로 만들면, 중력으로 아래쪽 장부터 배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을 '사일로'라고 한다.
- 박경철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 실린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에서
장을 배의 중간으로 모아 바셀린을 바른 거즈로 장을 둘러싼 다음 아이스크림의 콘 모양으로 만들면, 중력으로 아래쪽 장부터 배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걸 사일로라고 하죠.
- 권지예 『꽃게무덤』에 실린 단편소설 「봉인」에서
치밀한 이론과 논리로 무장한 평론과 좋은 글솜씨도 지은 소설이라 한들 거기에 양심이 없다면 무슨 소용 있으리. 표절 사실여부보다는 양심유무가 더 실망이다.
이번 동인문학상 수상작과 심사위원회의 표절여부 판단결과는 발가락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