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에서 나온 케라시스 샴푸에는 이러저러한 연구소에서 어쩌고 하는 설명과 함께 아래와 같은 화학식이 그려져 있다. 대충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서 보면 이게 아주 신기하게 생겼다.
이 화학식을 보면 벤젠 고리 세 개가 이어져 있고 거기에 판테놀, 스위스 알파인 허브 추출물, 케라틴, 그리고 실리콘 복합체가 붙어있다. 그런데 벤젠 고리에서 자주색으로 표시한 ㄱ 위치의 탄소는 팔이 다섯 개나 되고 파란 색으로 표시한 ㄴ 위치의 탄소는 팔이 무려 여섯 개나 된다. 보통 탄소는 팔이 네 개뿐이니까 이게 참 특이하고 획기적인 화합물이라는 거다. 사실 이 화학식을 그리는데 탄소 팔 개수가 맞지 않으니까 프로그램이 그리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걸 억지로 그리게 했을 정도다.
이 화학식을 그린 게 연구소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해 보인다. 아마도 홍보 쪽 사람이 이 샴푸에는 판테놀, 스위스 알파인 허브 추출물, 케라틴, 그리고 실리콘 복합체가 들어있다는 걸 멋지게 보여주려고 이 화학식을 그린 것 같은데, 이건 회사 망신이다. 그럴 듯하게 보이려고 벤젠 고리를 집어넣은 건지는 몰라도, 특히나 ㄴ 위치는 참 할 말이 없다. 집에 있는, 제품 이름에 '탄소 카본'을 굳이 겹쳐 써서 마치 탄소와 카본이 둘 다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전기 장판은 여기에 대면 나은 거구나.
그런데 애경에 전화해서 케라시스 샴푸에 그려진 화학식이 이상하다고 하면 별걸 다 가지고 트집잡는다고 할 것 같다.
* 4339년 5월 현재 팔리고 있는 케라시스 제품은 용기 무늬가 바뀌었고 겉에 위와 같은 화학식이 그려 있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