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일본 막부시대. 스무 살 안쪽의 남자만 주로 걸리는 유행병이 갑자기 번져 남자 인구가 급감하고, 그 때문에 남자가 대를 잇는 게 거의 불가능해지고, 그래서 3대 쇼군 이에미츠부터 적어도 8대 쇼군까지는 사실 여자였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 역사는 모두 이 설정에 맞춰 교묘하고 그럴듯하게 끼워맞춘다. 막부 시대 쇄국 정책도, 남자가 줄어든 국내 현실을 외국에서 알지 못하게 감추기 위해서였다든가 하는 식으로.
쇼군이 여자이므로 당연히(?) 오오쿠에는 남자들만 득실거린다. 역사상 쇼군의 측실이었던 여자들, 예를 들어 3대 쇼군 이에미츠의 측실이었던 오만노까따(おまんのかた)라든가 오타마노까따(おたまのかた)가 이 만화에선 모두 남자다. 특히 이 만화에서 오만노까따는 원래 어느 절에 새로 임명된 주지 스님이었지만 3대 쇼군 이에미츠를 알현하러 에도에 갔다가 타의로 오오쿠에 들어오게 되는 걸로 나오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오만노까따는 만화에서와 같은 이유로 에도에 알현왔다가 쇼군의 눈에 들어 측실로 들어앉게 됐다고 하니 놀랍다. 일본에선 여자도 절의 주지가 될 수 있었던가 보다. 스님을 측실로 눌러앉힌 건 웃기지만.
1권은 8대 쇼군 시절 얘기지만 2권부터는 3대 쇼군 때로 돌아간다. 이 만화가 3대 쇼군부터 8대까지 주욱 훑으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는 책이 나오는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데 있다. 1년에 한 권씩 나온다. 접는 게 좋겠다.
우리나라 만화가가 그린 만화조차도 일본식 표현이 난무하는 마당이니 일본 만화를 우리말로 번역한 건 별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이 책은 일본어를 그대로 직역한, 일본식 표현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오탈자나 맞춤법에 어긋난 것도 별로 없다. 이게 옮긴이의 역량인지 교정과 편집을 맡은 사람의 역량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번역과 교정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준다.
엄마 말씀으론, 그게 주지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우리나라도 여자만 있는 절에서는 여자 스님이 제일 높은 직책을 맡았다고 한다. 여자만 있는 절도 있나 봐.